
어쩌다 목포로 내려가게 되었는지
사실 계획하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남편과 크게 다툰 뒤로 그냥 집을 나서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목적지도 없었다. 기차표를 검색하다가 그냥 시간대가 맞는 목포행 KTX를 끊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차로 2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 애매함이 오히려 좋았다. 순천이나 부산도 고민했지만, 왠지 그곳들은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꺼려졌다. 도착해서 짐을 풀 곳을 찾는데, 평소라면 호텔 예약 사이트를 뒤졌겠지만 이번에는 왠지 낯선 공간에서 혼자 숨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바로박스’라는 곳을 예약하게 되었다. 1박에 대략 6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호텔처럼 거창한 서비스는 없어도 된다는 게 그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좁지만 묘하게 안심이 되던 공간
숙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작다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박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크기랄까. 짐을 내려놓고 침대 끝에 걸터앉으니 창밖으로 목포항 근처의 풍경이 조금 보였다. 사실 그전에는 부산 택시투어를 할까, 아니면 순천 정원박람회라도 가볼까 고민했지만, 막상 혼자 낯선 동네에 떨어지고 나니 밖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기운이 빠졌다. 숙소는 깔끔했지만, 방음이 아주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옆방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나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처음에는 조금 예민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들이 오히려 ‘나만 여기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참 아이러니한 감정이었다. 호텔의 적막함보다는 조금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해야 할까.
목적 없는 걸음으로 보낸 시간들
둘째 날은 딱히 정해둔 일정 없이 항구 근처를 그냥 걸었다. 목포라는 도시가 주는 묘한 차분함이 있었다. 항구 쪽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사투리 소리가 왠지 낯설게 들렸다. 누군가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을 물어본다면 여기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화려한 즐길 거리가 있는 잠실이나 부산 전시회 같은 곳과는 정반대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그냥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샀다. 숙소 주인분께서 문자로 친절하게 안내를 주셨는데, 얼굴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런 비대면 방식이 오히려 편했다. 누가 나를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었다.
불편함이 남긴 묘한 여운
물론 불편한 점은 있었다. 방이 좁아서 캐리어를 펼쳐두면 화장실 갈 때마다 장애물 넘기하듯 지나다녀야 했다. 그리고 숙소 주변에 편의점이 생각보다 멀어서 밤에 물을 사러 나갈 때 조금 귀찮기도 했다. 차라리 조금 더 비싸더라도 위치가 좋은 곳을 예약할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조차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게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성비가 좋은 숙소였겠지만, 나에게는 그냥 나를 방치해두기 좋은 작은 감옥 같기도 했다. 만약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이번처럼 무작정 떠나기보다는 조금 더 계획을 세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남겨진 생각들에 대하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한참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멈춰 있었는데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는 게 무겁게 느껴졌다. 바로박스에서 보낸 그 2박 3일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생각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작은 박스 안에 들어가 며칠 버티는 것, 그 정도의 도피가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목포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 멍하니 떠오른다. 조금 더 즐겁게 지내다 올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밋밋하고 조용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목포항 풍경 보면서, 혼자 여행할 때 예상 못한 조용함이 오히려 좋았어요.
작은 박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마치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