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창포에서 일몰을 보겠다고 무작정 예약했던 날

무창포에서 일몰을 보겠다고 무작정 예약했던 날

계획에 없던 무창포행

연말에 어디든 좀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사실 보령 무창포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대천해수욕장은 예전에 친구들이랑 가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좀 조용한 곳을 찾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무창포가 일몰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막상 가려고 보니 숙소를 정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사실 유명한 롯데호텔 같은 곳처럼 시설이 완벽한 숙소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바다가 보이고, 밤에 굴 좀 사다가 숙소에서 바비큐나 해 먹을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낡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숙소

지도 앱을 켜고 대충 눈에 띄는 곳을 골랐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느낌이 꽤 달랐다. 1박에 15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시설은 요즘 세련된 호텔하고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 벽지 끝이 조금 들떠 있고, 창문을 열면 바닷바람 때문에 끼익 소리가 나는 게 신경 쓰였다. 방안에는 약간 습한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열었더니 이번에는 옆 방에서 구워 먹는 고기 냄새가 바로 들어왔다. 방음이 정말 안 되는 구조였다. 그래도 창밖으로 보이는 석대도 쪽으로 해가 지는 풍경만큼은 확실히 예뻤다.

불편함과 바꾼 일몰

무창포 해변 근처를 한 바퀴 돌면서 느낀 건데, 여기는 정말 딱 해 지는 거 보러 오는 곳이라는 느낌이다. 근처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겨울 평일이라 그런지 썰렁했다. 저녁에 먹을거리를 사러 나갔더니 문 닫은 식당도 많아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결국 현지 수산시장에서 굴을 좀 사 왔는데, 껍데기 까는 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일이었다. 숙소 주방에 칼도 잘 안 들어서 거의 톱질을 하듯이 굴을 땄다. 손은 다 베일 뻔했고 옷에는 비린내까지 배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다시 간다면 조금 더 따져볼 것 같다

사실 숙소에 난방이 밤새도록 덜 들어와서 새벽에는 좀 떨었다. 보일러 온도를 올리려고 조절기를 만졌는데, 제대로 작동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방바닥이 미지근했다. 다음 날 아침에 체크아웃하면서 사장님께 말씀드리려다가 그냥 말았다. 어차피 다시 올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얼굴 붉힐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대천 쪽 숙소들이랑 비교하면 선택지가 좁아서 고생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더 비싼 곳을 갔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날 저녁 바닷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해 지는 걸 지켜보던 그 10분 정도의 기억은 지금도 이상하게 또렷하게 남아있다.

숙소 선택의 모호함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깔끔하고 편리한 숙소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고 믿었는데, 막상 불편한 곳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말이다. 다음에는 그냥 군산 쪽 캠핑장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거기는 시설이 더 열악할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기 냄새랑 창문 소음은 덜할 테니까. 무창포 숙소에서의 그 짧은 하룻밤은 좋았다고 하기에도, 최악이었다고 하기에도 참 애매한 기억으로 굳어버렸다.

댓글 3
  • 굴 까는 게 정말 힘들었겠네요. 저는 굴 까면서 손 베이는 거 생각하면 소름돋아요.

  • 캠핑장도 고려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바닷가 근처 캠핑장들은 밤에 도시 소음 없이 자연을 즐기기에 더 좋을 것 같아요.

  • 굴 껍데기를 까면서 톱질하는 모습이 정말 재밌네요! 저는 굴 까는 게 생각보다 엄청 힘들다고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