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길을 따라 들어갔던 날
지도를 켜고 영동 쪽을 향해 한참을 달렸다. 솔직히 말하면 호텔 같은 깔끔한 곳보다는 그냥 산 공기 좀 쐬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고른 숙소였다. 충청도 쪽은 계곡이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어서 무작정 예약을 했는데, 도착 직전 비포장도로를 만났을 땐 살짝 당황했다. 바퀴가 구를 때마다 차 하부가 긁히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식은땀이 났다. 예약할 때 사장님이 길 좀 좁다고 말씀은 하셨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1박에 15만 원 정도였는데, 가격이야 뭐 요즘 워낙 물가가 비싸니 그러려니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도시 매연과는 확실히 다른 묵직한 풀 냄새가 훅 끼쳐왔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뜻밖의 풍경
숙소 안은 기대했던 호텔식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황토방이라고 해서 기대를 조금 했는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벽지나 낡은 문틀 같은 게 보였다. 특이했던 건 방마다 PC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 누가 펜션에 와서 PC를 하나 싶었는데, 아마 오래전에 설치해두고 안 치우신 것 같았다. 전원을 켜보니 윈도우 XP 로고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인터넷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려서 그냥 끄는 게 나았다. 그래도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물한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오는 건 확실히 좋았다. 저녁 준비를 하려고 주방을 뒤졌는데, 가스레인지 불이 잘 안 붙어서 라이터를 찾느라 한참을 씨름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어설픈 방음의 문제
밤이 되니까 계곡 주변이라 그런지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밤 9시쯤 되었을까, 옆 방에서 고기를 굽는 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벽을 타고 너무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방음이 거의 안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산속 민박집이 다 이렇지 뭐, 하고 넘기려고 해도 옆방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니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TV도 채널이 몇 개 안 나와서 그냥 켜두기만 했다. 호텔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그 정제된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게 로컬 여행의 묘미라고 하기엔 너무 날것 그대로의 소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의 모호한 기억
새벽에 닭 우는 소리인지 무슨 새소리인지 때문에 깼다. 도시에서 6시에 일어나면 지옥 같았을 텐데, 여기선 왠지 모르게 그냥 눈이 떠졌다. 아침에 일어나 계곡 물에 손을 담가보니 정말 얼음장 같았다. 씻고 나서 짐을 챙겨 나오는데, 사장님이 어제 잘 잤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잘 잤냐고 묻기엔 너무 시끄러웠지만 그냥 웃으면서 대충 대답했다. 1박을 더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근처 영동 시내 구경이나 좀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은 우동이 왜 이렇게 맛있던지.
다시 가라면 과연 갈까 싶은 마음
결국 숙소라는 게 잠만 잘 자면 그만인 건지, 아니면 이런 불편함도 다 여행의 일부인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봤던 깔끔한 사진이랑은 좀 달라서 처음엔 실망도 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산속 공기만큼은 또 생각난다. 다시 가라고 하면 왠지 갈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조금 더 시설이 좋은 곳을 찾을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반반이다. 다음에는 그냥 좀 더 돈을 쓰더라도 시설이 보장된 곳으로 가야지 싶으면서도, 막상 이런 민박집 특유의 투박한 분위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을 것 같다. 결국 이번 여행도 완벽하게 만족했다기보단 그냥 어영부영 다녀온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비포장도로 때문에 차가 너무 떨렸어요. 특히 긁힐까 봐 더 신경 쓰였던 것 같아요.
산 속 공기 진짜 좋았어요. 길이 예상보다 좁아서 조금 힘들었던 부분, 저도 비슷한 경험 한 적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