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획에 없던 외박이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지난주 주말,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일이 꼬여서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 원래는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차 시동이 잘 안 걸리고 근처 카센터도 문을 닫는 시간이라 참 난감했다. 저녁 9시가 넘어가니 눈앞이 캄캄해지더라. 결국 핸드폰을 켜서 숙소예약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근처 모텔들이 주르륵 떴는데, 사실 시설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아 제일 평점이 무난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이름이 조금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데, ‘SM모텔’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정말 길가에 있는 흔한 동네 모텔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는데, 이건 뭐 어쩔 수 없지 싶었다. 대실도 하는 곳이라 그런지 복도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너무 좁은 방과 이상하게 돌아가던 PC
방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침대 상태였다. 겉보기엔 정돈되어 있었지만, 베개에 희미한 자국이 남아있어서 괜히 찝찝했다. 급하게 예약한 곳이라 탓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하룻밤 묵는 가격이 6만 원인가 7만 원 정도였는데 시설은 생각보다 더 낡았다. 벽지는 군데군데 뜯어져 있었고, TV는 리모컨이 잘 안 먹혀서 서너 번은 눌러야 채널이 돌아갔다. 방 한구석에 PC텔 용도로 둔 것 같은 컴퓨터가 있었는데, 켜보니까 윈도우 부팅만 5분이 넘게 걸렸다.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보려고 했던 내가 순진했던 거지. 결국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포기하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봤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유노윤호가 뭐 1인 3역을 하는 뮤직비디오를 냈다는 기사가 떴길래 멍하니 읽고 있었다. 모텔 장기 투숙객 역할도 했다는데, 지금 이 상황이 딱 그 드라마 속 한 장면 같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더라.
방음이 전혀 안 되어 잠을 설쳤다
밤 12시가 넘어가니까 옆방인지 윗방인지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가구 옮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싸우는 건가 싶기도 해서 귀를 기울였는데 영 알 수 없는 소음이었다. 건물이 낡아서 그런지 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복도에서 나는 발소리가 그대로 방 안까지 울렸다. 예민한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려니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새벽 2시쯤에는 근처 도로에서 트럭 지나가는 소리까지 섞여서 도무지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모텔은 그냥 잠만 자는 곳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말 그대로 잠만 자려고 했는데, 그 잠조차 제대로 자기 어려운 환경인 줄은 몰랐지. 돈을 좀 더 내고 괜찮은 호텔을 찾았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차에서 잘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잠깐 들었다.
화장실의 불편한 기억과 퇴실 시간
화장실은 더 가관이었다. 타일 사이사이에 곰팡이가 꽤 보였고, 수압은 약해서 샤워기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수준이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긴 했지만, 온도를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쪽으로 조금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반대편으로 돌리면 바로 찬물이 나와서 샤워하는 내내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10시쯤 퇴실 준비를 하는데, 카운터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키를 어디에 둬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그냥 대충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왔는데,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안 들리나 싶어 뒤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밖으로 나오니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전날 고장 났던 차는 아침이 되니 시동이 거짓말처럼 한 번에 걸렸다. 뭔가 허탈한 마음으로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왜 굳이 그 돈을 내고 잠도 못 자면서 고생을 했나 싶었다. 다시는 이런 상황이 안 오길 바랄 뿐이지만, 막상 또 닥치면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