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호가 마지막인 모텔 복도에서 보낸 하룻밤

500호가 마지막인 모텔 복도에서 보낸 하룻밤

엘리베이터 숫자의 비밀과 500호의 기억

지방 출장을 다니다 보면 이름이 거창한 호텔보다는 그저 깔끔한 모텔을 찾는 게 일상이 된다. 지난번 안면도 근처를 지나다 급하게 잡은 숙소는 이름부터가 묘하게 낡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4층 건물인데도 가장 높은 층이 500호대로 시작되는 걸 보고 잠시 멈칫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4층 대신 5층 버튼이 보였고, 복도 끝 500호 문 앞에 섰을 때 왠지 모를 썰렁함이 느껴졌다. 왜 우리나라 모텔들은 예외 없이 숫자 4를 싫어하는 걸까. 굳이 500호라고 붙여두면 더 넓은 객실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냥 평범한 베드 하나와 작은 TV가 전부인 좁은 방이다.

대실과 숙박 사이 애매한 요금의 기준

예전에 평화광장 쪽에서 4만 원짜리 세느강 모텔을 이용해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가격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인지 5만 원 밑으로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장기 투숙을 문의하면 주인장이 대뜸 얼마까지 생각하냐고 되묻는데, 이게 참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어떤 곳은 일주일 단위로 끊으면 깎아주기도 하고, 어떤 곳은 단호하게 하루 요금 그대로 받는다. 천안의 어느 원플러스 숙소 같은 곳은 앱으로 예약하는 게 더 저렴해서 현장에서 결제하려던 내 손을 민망하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다시 결제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소음의 상관관계

태안의 아재펜션 같은 곳은 풍경이라도 좋지, 모텔은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 벽이 보이거나 주차장의 눅눅한 냄새가 올라오기 일쑤다. 500호라고 적힌 방에서 창문을 살짝 열어봤는데, 마침 바로 아래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방음이 얼마나 안 되는지 옆방에서 물 트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밤이었다. 사실 여행객 입장에서는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대천 메리머드호텔처럼 바다가 보이는 곳을 선호하게 되는데, 막상 예산이 부족하면 이런 낡은 모텔로 타협하게 된다. 타협하고 나면 그날 밤은 유독 잠이 오지 않는 게 문제다.

500호점에서 느끼는 프랜차이즈의 편리함과 낯섦

요즘은 PC방도 그렇고 셀프빨래방도 500호점 돌파라는 타이틀을 자주 보게 된다. 어디든 브랜드가 붙어 있으면 청소 상태나 비품 관리가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청주 메리제인호텔 같은 곳을 이용할 때도 비슷하다. 프랜차이즈 이름이 붙은 곳은 기본은 하겠다는 안도감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작은 숙소들이 사라지고 다 똑같은 인테리어의 방만 남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실 500호라는 숫자가 주는 낡은 감성이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는데, 그런 곳들은 대부분 소방 점검 이슈가 있거나 시설이 노후화되어 결국 사라지게 될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소 선택의 고민

결국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분이 달라진다. 다음번엔 조금 더 계획적으로 움직여야지 다짐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해서 어둑어둑해지면 결국 눈앞에 보이는 모텔 간판에 의존하게 된다. 500호 문고리를 돌리며 느꼈던 그 특유의 쾌쾌한 공기와 낯선 벽지의 무늬는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다음에는 좀 더 나은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500호대 방에서 리모컨을 뒤적이며 밤을 보내게 될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날의 운과 예산에 맞추어 적당히 타협하고 잠들 뿐이다.

댓글 1
  • 500호점마다 주인장의 질문이 웃기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몇 번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