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러운 결정과 속초행
올해 마지막 연차를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그냥 무작정 속초로 차를 돌렸다. 사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평소에 호텔 예약 앱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게 습관이 된 모양이다. 마침 쿠팡에서 가성비 호텔 챌린지 같은 걸 하고 있길래 슥 훑어보다가 ‘모레브 바닷가 오션뷰 스파펜션’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이름부터가 너무 직관적이라서 오히려 더 고민 없이 눌렀던 것 같다. 4만 원대부터 시작한다는 문구를 보고 들어갔는데, 주말이나 성수기 즈음엔 당연히 그 가격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왠지 모를 기대감이 조금은 있었나 보다. 막상 예약창을 넘겨보니 생각했던 예산보다는 조금 더 올라갔지만, 어차피 갈 거면 바다라도 제대로 보이는 곳에서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소금기
속초에 도착하니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펜션 근처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코끝으로 짠내가 확 풍겼다. 확실히 도시에서 맡던 냄새랑은 다르다. 체크인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했는데, 사장님이 꽤 분주해 보였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바다가 바로 보이는 쪽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유리창에 낀 소금기 때문에 뷰가 살짝 뿌옇게 보였다. 이런 사소한 게 왜 이렇게 눈에 띄는지 모르겠다. 한창 깔끔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을 상상했는데, 막상 마주한 건 바닷가 숙소 특유의 어쩔 수 없는 끈적임이었다. 그래도 문을 열고 테라스 쪽으로 나가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은 들었다. 펜션 단지라기보다는 그냥 조용한 바닷가 마을 골목 끝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라 차분하긴 했다.
생각보다 컸던 스파 욕조의 존재감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스파 욕조가 사실 처음에 봤을 때는 좀 뜬금없어 보였다. 이게 좁은 방 안에서 너무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서, 지나다닐 때마다 발가락을 부딪힐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 처음에는 ‘아, 바다 보면서 스파 하면 진짜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있으니까 짐 놓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오히려 애물단지가 된 기분이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김이 서리기 시작하니까 창밖이 아예 안 보이기 시작했다. 습기 때문에 환풍기를 돌려도 소용이 없어서 결국 문을 살짝 열어두고 있었는데, 그러자니 찬 바람이 들어오고 참 난감했다. 4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숙소라고 해서 덜컥 잡은 건데, 이런저런 시설들이 생각보다 관리가 까다롭구나 싶었다.
근처 인프라와 단조로운 저녁
주변에 뭐가 별로 없다. 호텔처럼 편의점이 바로 밑에 있는 게 아니라, 밤늦게 맥주 한 잔 더 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예전에 갔던 큰 호텔들은 로비만 내려가도 뭐든 다 해결됐는데, 여기는 진짜 휴식에만 집중해야 하는 곳 같았다. 애견 동반이 가능한 모텔이나 풋살장이 있는 펜션을 찾던 사람들에겐 여기는 너무 정적인 곳일지도 모르겠다. 20명 단체 펜션처럼 시끌벅적하게 놀 수 있는 곳도 아니라서, 밤이 되니 파도 소리만 들리고 정말 고요했다. 이게 평온해서 좋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좀 심심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예전에 롯데월드나 아울렛 근처 숙소에 머물 때는 북적거리는 맛이 있었는데, 여기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다음엔 그냥 큰 호텔로 갈까 싶기도 하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는데, 어제보다는 하늘이 조금 더 맑았다. 뿌옇던 유리창 너머의 바다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는 바다가 훨씬 좋긴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드는 생각은 ‘스파 펜션이 낭만적이긴 한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거였다. 욕조 청소도 왠지 찝찝해서 다시 한번 물로 헹구고 사용했다. 다음번에 또 이런 데를 오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돈을 보태서 수영장이 큰 호텔이나 아예 서비스가 확실한 곳으로 가야 하나 싶다. 아니면 차라리 모텔 달방 가격 정도로 저렴한 곳에서 잠만 자고 밖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이랄 게 딱히 없다. 그냥 바다 한번 보고, 스파에 물 받아놓고 한 시간쯤 멍하게 앉아있다가 온 게 이번 여행의 전부였다.
밤에 파도 소리만 들려야 한다는 게 저절로 무서워졌네. 롯데월드처럼 활기찬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좀 힘들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