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획에 없던 6번 국도 변의 모텔
애틀랜타에서 출발해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쪽으로 내려가는 로드트립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사실 숙소 걱정은 크게 안 했다. 그냥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적당히 졸리면 근처에 있는 홀리데이 인이나 베스트 웨스턴 같은 곳에 들어가면 되겠지 싶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운전대를 잡고 보니 생각보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거다. 미국 남동부의 도로는 가로등도 별로 없어서 밤이 되면 거의 암흑이다. 옆에 앉은 동승자도 슬슬 피곤해하는 눈치라 무작정 출구로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숙소를 찾았다. 지도 앱에는 숙소가 몇 개 뜨는데, 다들 이름이 비슷비슷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결국 150달러 정도면 적당하겠지 싶어 들어간 곳은 체인 호텔이 아니라 그냥 동네의 낡은 모텔이었다.
카드 키가 말을 듣지 않던 저녁
체크인을 하러 카운터에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영어를 아주 빠르게, 그것도 묘한 억양으로 말씀하셔서 알아듣기가 좀 힘들었다. 그래도 대충 2층 방으로 배정받고 올라갔는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방 번호는 214호였는데, 도어락에 카드 키를 꽂아도 빨간 불만 들어오고 문이 열릴 생각을 안 하는 거다. 한 다섯 번 정도 시도하다가 결국 다시 1층 로비로 내려가서 아저씨한테 뭐라고 하니까 아저씨가 귀찮다는 듯이 다시 키를 긁어주더라. 알고 보니 너무 깊숙이 넣지 말고 살짝 대기만 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걸 누가 알았겠나. 방에 들어오니 습한 공기가 확 끼쳤는데, 에어컨을 틀어도 곰팡이 냄새가 섞인 찬바람이 나오는 게 영 개운치 않았다.
생각보다 컸던 거리감과 묘한 적막
방 안에 앉아서 창문을 보니 주차장이 훤히 보였다. 내 차 옆에 낡은 픽업트럭 한 대가 서 있었는데, 짐칸에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었다. 괜히 누가 내 차를 긁지는 않을까 싶어 커튼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미국 남동부는 확실히 도시랑은 분위기가 다르다. 찰스턴까지 남은 거리를 보니 아직도 3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오늘 무리해서 여기까지 온 건지 아니면 애초에 계획이 너무 느슨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변산 소노벨 같은 곳에서 가족들이랑 편하게 지내던 생각도 나고, 뉴욕 여행 갔을 때 좁지만 깨끗했던 호텔 방이 그리워졌다. 꽃지해수욕장 근처 호텔들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의 침대는 너무 푹신해서 오히려 허리가 아플 것 같았고, 베개는 너무 높았다.
새벽 내내 울리던 냉장고 소음
잠을 좀 자보려고 했는데, 방 안의 냉장고가 문제였다. 이게 한 10분에 한 번씩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마치 옆방에서 공사라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참다못해 냉장고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렸다. 그러고 나니 너무 고요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창밖으로는 이름 모를 벌레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아까 검색해보니 미국 남동부가 원산지라는 낮달맞이꽃 같은 것들이 밖에도 피어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무언의 사랑이라던가 하는 꽃말이 떠올랐지만, 지금 내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습한 공기가 커튼을 살짝 흔드는데, 그냥 다시 차를 몰고 나갈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낡은 방에서 맞이한 아침의 찜찜함
결국 아침이 밝았는데, 제대로 잤는지 모르겠다.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갔더니 수건이 딱 두 장 있었다. 추가로 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그냥 대충 닦고 나왔다. 체크아웃을 할 때는 주인 아저씨가 아예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데스크에 키를 올려두고 나왔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거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숙소비로 150달러를 낸 게 좀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던 밤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싶기도 하고. 찰스턴으로 가는 길에 맥도날드라도 보이면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사 마셔야겠다. 다시는 이런 무계획적인 로드트립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마 다음 여행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만 같다. 이상하게 마음이 깔끔하게 정리되지가 않는다.
밤길에 호텔이 그렇게 어두웠던 거 보니, 저도 여행할 때 충전기 챙기는 거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낡은 호텔 수건 갯수가 적어서 당황했던 적이 있는데, 그땐 정말 씻는 것 자체가 번거로웠죠.
사진에서 픽업트럭 짐칸에 있는 물건들 보니까, 여행 계획 세울 때 좀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겠어요.